사실 주위에 많은 분들은 나를 말렸다. 어학연수를 간다고 하여 미래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어떤 확실한 보장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떠나온지... 언 5일?? 벌써 후회스럽기도 하다.
아마도 미래에 대한 어떠한 보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 결정에 대해서는 절대 후회하지 말자!!
어떠한 결과가 오더라도 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자.
그것이 내 생각이다.
희망을 갖고... 미래를 만들어 나가자..
꿈은 만들어 가는 거라고 한다. 도전없이 꿈을 이룰수는 없는법... ㅎㅎ

태극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박영효가 아니다.
흔히들 태극기는 수신사(修信使) 박영효(朴泳孝)가 일본 가는 배 안에서 급조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박영효는 태극기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최초로 만들어낸 사람은 아니다.
우리 조정에서 국기에 대해 처음으로 눈뜨게 된 것은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지은 `조선책략(朝鮮策略)'에 비롯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개화와 외교에 막중한 영향을 끼쳤던 이 소책자에 조선이 독립국이려면 국기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 국기 도형을 중국의 용기(龍旗)를 본떠서 만들되 사각(四角)으로 하지 말고 삼각기(三角旗)로 해서 청나라의 허락을 받도록 할 것을 권하고 있는 점이 고약하다. 이 `조선책략'에 좇기로 한 조정에서는 1880년 동지사(冬至使) 가는 편에 중국의 국기가 어떻게 생겼으며, 조선 국기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이에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은 용 모양을 그려 속국임을 표시하고 그 이름을 용방기(龍方旗)라 함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태극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고종과 김홍집이다.
이 같은 속국 표시에 불만을 품었던 고종과 개화 내각에서는 이를 묵살하고 없었던 일로 덮어 두고 있다. 그 후 국기 문제가 재론된 것은 1882년 한미수교조약을 맺을 때였다. 수교의 실무를 돕기 위해 보낸 청나라 외교관 마건충(馬建忠)이 조선측 대표인 김홍집(金弘集)에게 먼나라와의 수교에 있어 국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조선 조정에서 생각하고 있는 기식(旗式)이 일본 국기를 닮았다 하여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아마도 당시의 조정에서 청나라 속국을 탈피한 나름대로의 국가 도안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임금을 뜻하는 붉은 바탕에 조야의 관원을 뜻하는 푸른 색과 백성을 뜻하는 흰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던 것 같다.
`임금님은 붉은 옷을, 관원들은 푸른 옷을, 백성은 흰 옷을 입기에 발상된 도식' 이라고 김홍집이 설명하자, 교활한 마건충은 다음과 같은 수정안을 내놓고 있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니 국기의 바탕을 흰색으로 하고 임금을 붉은 용 그림으로, 관원을 파란 구름 무늬로 타나내되 용발톱을 네 개로 함으로써 중국 국기의 다섯 용발톱과 구분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김홍집은 마건충 안에 다시 수정을 가한다. `홍룡청운(紅龍 靑雲)은 그리기에 번잡하니 흰 바탕에 반홍반청(半紅半靑)의 태극 무늬로 하고 그 둘레에 조선 8자도를 뜻하는 팔괘(八卦)를 그리면 일본 국기와 비슷함을 면할 게 아니요' 했다.
이런 일이 있는지 넉 달 후에 태극기가 국기로서 공식 채택되고 있다.
오늘 기사 중에 독립기념관에 있는 태극기가 원본이 아니라고 한다. ㅡㅡ;;
"독립기념관 '最古태극기' 원본 아니었다 "
복제품 '표기' 없이 16년간 좌우 바뀐채 전시
진품은 27년동안 중앙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독립기념관이 공개적으로 소장 중이라고 밝혀 온 현존 최고(最古)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는 원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본보 취재결과, 데니 태극기는 1981년 기증 이후 지금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구한말 고종이 1890년 당시 조선 정부의 외교 고문이던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에게 하사한 이 태극기는 본보 보도(81년 1월 5일자)로 존재 사실이 알려졌으며, 같은 해 데니의 후손이자 소유자인 미국인 윌리엄 롤스턴씨가 “한국 국민들이 볼 수 있게 해달라”며 우리 정부에 기증했다.
...
박물관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받은 후 2000년 3월 잠깐 일반에 공개한 적이 있을 뿐, 줄곧 지하 수장고에 넣어 놓았다”며 “데니 태극기는 우리 박물관과 전시 성격이 맞지 않아 상시 전시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명호 태극기선양운동중앙회 상임고문은 “데니 태극기는 초창기 태극기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급 역사물”이라며 “관계 당국은 국민이 최고의 태극기를 볼 수 있도록 상시 전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Reference: 네이버 뉴스]
부의금 봉투 작성 요령 동영상
항상 가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 주위 분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곤한다.
이럴때마다 정확히 모르는 예절에.. 혹시나 실수를 하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한 번 찾아보았다.
장례식장의 예절...
<옷>
화려하거나 현란한 무늬가 있는 옷이나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 원색의 옷, 생김새(모양)가 너무 튀는 옷은 피하고 청결한 옷으로 보편적이고 단정한 차림으로 하면 됩니다.
자켓 등의 위 겉옷을 꼭 입어야 하며 치장을 삼가합니다.
양장으로 입을 경우에는 검정색,곤색,감색,회색 등 어두운색이 무난하고 셔츠는 흰색 스타킹(양말), 구두 등도 검정색이 좋으나 특별히 튀어나지 않는 것이면 됩니다.
검정색 상의에 검정색 스커트 차림이 가장 무난하나 단정한 바지 차림도 괜찮습니다.구두, 양말(스타킹)도 검정색이 좋으나 꼭 그래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평상복일 경우 단색계통이 무난하며 화려한 의상이나 몸에 꼭 맞는 옷은 삼가 합니다.화장은 연하게 해야하고 특히 핑크나 레드 색상의 입술화장, 짙은 입술화장은 하지 않습니다.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 액세서리도 하지 않거나 눈에 띄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문상 시기>
문상은 유족들이 성복을 끝내고 조문객을 맞을 준비가 된 후에 가는 것이 예의입니다.
일반적으로 임종일 다음날 조문을 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문상 절차>
문상을 가서는 풍습이나 종교가 다르더라도 가급적 해당 상가의 상례에 따르는 것이 예의이며
간혹 망인이 장수하시고 돌아가셨을 때 호상(好喪)이라하여 웃고 떠드는 일이 있으나 삼가
하는게 좋다.
① 상가(빈소)에 도착하면 문밖에서 외투나 모자 등을 미리 벗어 든다.
② 빈소의 영정 앞(옆)에 있는 상제(유족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③ 분향:
향나무를 깎은 나무향일 경우는 오른손으로 향을 조금씩 세 번 집어 향로에 넣는다.(이 때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치기도한다. '3상향'이라 하여 조금씩 3번 집어 넣는다) 선향(線香.막대향)일 경우 하나나 둘을(삼상향이라 하여 3개를 쓰기도 한다) 집어 촛불에 (혹은 라이터가 향 옆에 있으면 그 라이터로) 불을 붙인 다음 향이 타면 불꽃(화염)은 가볍게 흔들어 끄던가, 손바닥으로 바람을 일으켜 끄던가, 살짝 불어서 끈다.(원래는 입으로는 불지 않는다) 다음은 공손히 향로에 꽃는다.(여러개일 경우에는 하나씩 꽂기도 한다)
④ 일어서서 뒷걸음으로 조금 물러나 영좌를 쳐다본 후 두 번 절한다. 종교에 따라 절을 하지 않는 경우는 영좌앞에 꽃을 놓은후 정중히 고개 숙여 예를 표한다.(묵념)
⑤ 상제(유족들)들을 향하여 선 후 상제들과 맞절한다.
⑥ 평소 안면이 있는 경우라면 상제에게 조문 인사말을 건네는데 이 때에는 낮은 목소리로 짧게 위로의 말을 하되 고인과 관련 이것 저것 질문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⑦ 문상이 끝나고 물러나올 때에는 두 세 걸음 뒤로 물러난 뒤, 몸을 돌려 나오는 것이 좋다.
<문상시 인사말>
문상시에는 고인에게 재배하고 상제들과 맞절한 후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물러나와도 된다. 상을 당한 사람을 가장 극진히 위로해야 할 자리이지만 그 어떤 말도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위로가 될 수 없다는 뜻이며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깊은 조의를 표하는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조문을 받는 상주 역시 말을 하지 않아도 되며, 더욱이 상주는 죄인이므로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통적인 관습이다. 그러나 실제 조문의 말은 문상객과 상주의 나이, 평소의 친소 관계등,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바람직하다. 격식이나 형식을 차린 표현보다 따뜻하고 진지한 위로 한마디를 미리 문상전에 준비하는 것이 좋다. 상주도 ''고맙습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등으로 문상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
<문상시 삼가할 일>
유족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있는 상황이므로 말을 많이 시키거나 고인에 대해 상세하게 묻지 않도록 한다. 상가에서 반가운 친구나 지인 등을 만났을 때 큰소리를 내지말고 조용히 밖에서 대화한다. 궂은 일 등을 돕되 상례절차 등에 대해서는 간섭(주장)하지 않는다.종교나 풍습의 차이가 있더라도 가급적 그 상가의 예에 따른다.
[참고사이트]네이버 지식인
신기하다..
열기구 안에 통신 장비를 넣고 하늘에 띄우면.. 무선통신을 할 수 있느 환경이 된다느 것이다.
산악이라든지.. 무선 통신이 들어오기 힘들 곳도 이러한 열기구 하나만 띄우면. 된다는 사실(?)... 음..
그리고 전파는 40개의 모바일 통신 탑을 합쳐놓은 것만큼 강력하다고 한다. 음..
앞으로 시골에서 이런 열기구를 쉽게 보게 되지 않을까??
근데.. 비행기들이 위험하겠군.. 음..
이건 누구한테 허락 받고 띄워야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처럼 전선도 많고.. 헬기도 많이 다니는데..
누구한테 허락을 받고 띄울 수 있는 것일까??
현재 적을 두고 있는 대학원이 있다.
이제 마지막 5학기이다. 그리고 오늘부터 드뎌 등록금 고지서가 발행되고 있다.
근데.. 허걱이다.
물론 현재 내가 다니는 대학원은 다행이도 저렴한 등록금인 편이지만,
그 인상률은 누구보다도 하늘을 찌르다 못해 우주로 나아갈 판이다. ㅡㅡ;;;
최근 몇 년 동안 대학원의 질을 목적으로 인상되는 높은 인상폭인데..
입학당시 입학금을 포함하여 200만원이 조금 넘던것이 작년에는 220만원이 가량이었고
올해는 250만원 가까이 된다.
무려 13.6% 이다. 물론 다른 사립대학교의 등록금에 비하면 아직도 저렴한 편이지만..
그 인상률은 어느 사립대 못지않다.
경제 성장률은 6% 가랴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등록금 인상률이 13.6%라니..
최근 기사를 보다보니.. K 대학의 공과대학 등록금이 1000만원이 넘어가버렸다. 물론 일년치가..
돈이 우수운 것일까? 아님. 학생을 바라보는 학교의 시선이 학생이 돈으로 보이는 것일까??
정상적인 가정(우리나라 평균적인 월급쟁이 가장이 집안을 꾸리는 가정)을 기준으로
화목한 삶과 동시에 자녀 두명의 등록금 정도 낼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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